문화유산활용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3) 정운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3) 정운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③ 정운

2022년 작가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4ScW9oaD3PU)


남지 않는다는 것

공간의 형태 변화와 그것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나름의 연관성들을 찾아내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장소성에 관심이 많아서 권진규 아틀리에에 오기 전에 군산에서 10개월 정도 레지던시를 했습니다. 저는 건축 유산이 읽을 수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와는 단절된 상태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집들이나 거리들, 그런 것들이 형태로 남아 저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고 영상작업을 했습니다. 
가장 최근 작업은 코로나 기간 동안 제가 집에서 느꼈던 것들을 영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집에서 혼자 오래 지내다보니 ‘내가 이 집에 사는 유령이 아닌가? 먹고 입고 마시는 것들은 실재하고, 나는 아무한테도 목격당하지 않았는데 사실 없는게 아닐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사물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런 형태들을 탐구해나가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3D 스캔방식을 활용해 방과 사물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소실돼서 크레바스처럼 표면이 터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좌표끼리 결합해서 형태가 일그러지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제 심리적인 상태나 저에게 보여지는 상황들의 상태를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과물이 빛과 그림자로만 남는다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닌, 틀고 나면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다는 것이 좋아서 계속 영상매체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권진규 아틀리에 오픈 스튜디오에서 보여드렸던 작업은 군산에서 찍었던 영상들의 콜라주였는데요, 영상들을 여러 개 병렬적으로 배치를 해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리듬들을 보여준 영상 작품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음악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오픈 스튜디오 때는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느낌이었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제법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와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런 과정들이 생소했던 것 같아요. 가을 초입이었던 것 같은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가 산 꼭대기에 위치해있었는데 근처의 집들도 오래된 집들이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과거는 항상 흑백으로 기억되는데, 저는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권진규 선생님이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갖고 나와 정말 동시대의 사람인 것처럼 돌아다니시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아틀리에에서 무엇을 하셨을까, 또 가족분들이랑 같이 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지금이랑 느낌이 많이 달랐을까? 작업자로서 겹쳐지는 삶들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행동했던 것이 처음은 아니고 그 분이 생각했던 것들, ‘권진규 선생님께서 오늘의 햇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일과를 보내셨을까’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외롭다는 생각을 가끔 하긴 했지만 또 외롭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와 같은 길을 걸으셨던 분의 존재가 있다.’ ···. 아틀리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저 혼자 있었지만, 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보거나 마당에 앉아서 생각하던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연한 만남들

한 번은 작업실 올라가는데, 대문에 편지봉투가 끼워져 있더라고요. 우편으로 온 건 아니었고, 누군가가 끼워놓은 거였는데 열어보니까 그 날의 시가 써져 있었어요. 동네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써놓으신 것 같은데, 누군가 읽겠지하고 아틀리에 입구가 아니라 올라가는 길 폐가 대문에 끼워두신 거였는데 그런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우연한 만남들. 
아틀리에를 개방하는 날에 방문하셨던 일반 관람객분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또래분들이셨는데 이런 곳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시고, 본인들이 느꼈던 것을 가감 없이 말씀하시는 게 정말 좋았어요. 예술을 하는 분들이나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서 아틀리에에 오시는 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틀리에 있을 때 주변 집들이 헐리고, 새로 지어지고 하던 시기였거든요. 안 가본 지 오래되어서 지금은 다른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오고 하는 과정 자체가 공간의 새로운 역사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아틀리에에 오시는 작가님들이 공간의 흔적이 작품이나 나의 삶에 스며들도록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입주하셨거나 입주하신 작가님들과의 네트워킹도 좋을 것 같고요.
권진규 선생님은 지금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셨겠죠? 사후에 권진규 선생님의 흩어진 작품들이 모여서 기증되고, 아틀리에로 관람객이 오고, 이런 과정들을 편지에서 써서 보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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