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활용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6) 허나영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5) 허나영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⑥ 허나영


비예술 전공자로서 회사 생활을 8년 하고 2014년 뒤늦은 나이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과정과 결과가 숫자로 치환되는 일을 해오면서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 아닌 다른 가치를 찾고 싶었고, 그 고민이 이후에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탐정’과 같은 정체성으로 삶 속에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조형하고 발굴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처음 작가명은 ‘허탐정’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했었죠.
작업을 시작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늘 좁은 원룸에서 생활과 작업을 함께 할 때라 작업실이라는 것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기에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는 한 때 마음을 다했던 작가가 머물렀던 곳이기에 마음이 와닿았어요. 국공립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보살핌으로 운영되는 시민문화유산이라는 것도 호기심이 생겼고요. 작가에게 연구실이면서 작업실, 때로는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안식처이자 고요한 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틀리에에 지원 할 당시에 작업 이력이 많지 않았기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한 시기 나를 정리하며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처음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고민들을 서술했는데, 인터뷰 심사 기회가 와서 많이 놀랐어요. 인터뷰 심사 때는 작가로서 평가하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이력에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질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에 편안하고 즐거이 인터뷰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운드 작업을 지속해 보려고 합니다. 소리의 잔상과 LED를 이용한 눈의 잔상이 만나서, 관객한테 어떤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의 실험을 내년에도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불안하고 의심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틀리에 작가로 선정된 이후에 나 스스로를 믿고 더 나아가보자 용기를 가지게 되었어요. 입주 이후에는 작가로서 조금 더 목표가 생기고 작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명의 작가만이 입주하는 형태는 자율성과 함께 책임감을 더 부여했던 것 같아요. 이 공간을 잘 돌보고 싶었고, 권진규 작가님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많은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작가 1인이 공간에서 외부의 불필요한 자극 없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 있지만 지하철역 도보 10분 거리의 언덕 중턱에 이렇게 운치 있고 고요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때때로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틀리에 마당을 자유롭게 오가는 고양이들의 몸짓과 소리도 정겹고 따스한 기억입니다.


다시 보다

그 무렵 일본 시코쿠 순례길을 다녀온 이후에 한국에서 잘 드러나지 공간들의 길을 이어서 순례길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에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감지할 수는 없는 길들을 여행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동선동 근처를 걷다가 인근에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를 알게 되었고, 여성인권센터 활동가분의 제안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다. 4개월 간의 집결지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여성인권센터와 함께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전시  <다시 보다>를 만들었습니다. 
아웃리치 활동을 했던 이유는 타인의 삶을 대상화 시키지 않고, 재현에 그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올바름, 윤리적인 질문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작가로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관람객들에게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보다>는 권진규 아틀리에 근처에 있는 ‘미인도’라는 공간에서 열렸는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말들>이라는 설치 작업을 통해 모두 알고 있지만 묵인하는,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집결지 여성들의 말과 글들을 수집했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얼굴과 몸을 32장의 광목 커튼에 새겼습니다. 어두운 몸 안의 말들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 말들이 몸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장면을 떠올리며 관객이 그 말들 사이를 이동하게 만들었지요. 공간은 입구와 출구를 다르게 한 미로 같은 구성으로 관람객은 총 32장의 광목 커튼을 열어 젖혀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습니다. 두려운 미지의 대상과 마주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나와 다른 타자들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시기였어요. 그 시간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은 이후에 <영적인 탐구 여행사>에 담기도 했습니다. 
오픈 스튜디오 기간이 마침 <다시 보다> 전시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틀리에 근처에 있는 공간에서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를 보고 아틀리에로 이동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떤 발걸음, 걸으며 기록하며 기억하다’라는 주제를 통해서 사적인 기록물을 소재로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과 작업에서 마주한 고민들과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말과 글들을 모아 작은 zine을 만들었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께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법 같은 시간들

오픈 스튜디오 때 방문했던 관람객이 마당에서 맞은편 집을 쳐다보다가 창문을 여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셨습다. 창문을 열었던 이는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습니다.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재회한 두 사람과 함께 아틀리에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맞은편 집에 사셨던 분은 오랫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도 권진규 아틀리에를 처음 방문했다고 하시며, 이런 공간이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외국인 한 분과 한국인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주말에는 출국해야 되어서 혹시나 해서 평일에 와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건축을 공부하는 분들이었고, 이곳에 애정이 있으셔서 문을 열어드리고 공간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틀리에를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고, 오랜 시간 노트에 스케치를 정성스레 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존재

그동안 설치, 퍼포먼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등 다양한 형식을 차용하여 노인, 도시 재개발, 성매매, 고독사, 기후 위기, 다크 투어리즘 등 기록되지 못한 서사들, 서사 없는 작은 주체들, 예술로 포획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과 움직임, 공간의 안과 밖을 전시와 공연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는 작품보다는 이야기 장을 만드는 자리, 작업을 관람하는 방식을 작품화 하곤 했으며 때때로 작품은 활동, 무형, 비물질, 사라지는 양식을 띠기도 합니다. 
특히 교차하는 공간과 몸은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보는 행위에서 벗어나 ‘겪는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 물리적인 안팎의 경험들을 하나의 장면들로 만들고자 합니다. 집 밖을 나온 여성들이 함께 걸으며 나눴던 길, 시코쿠 순례길에서 미아리 집결지, 그리고 도시 재생의 이름으로 허물어지는 가장자리들, 자발적 실종자들의 집단거주지, 파괴되고 있는 생태 서식지를 만나왔습니다. 다양한 길의 흔적과 조각이 서로 이어지고 스며드는 경계로서 다른 길과 맞닿으며,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장면을 희망합니다.

예술로 불리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예술적인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 이러한 경계를 허물고, 일상에서 예술의 순간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싶습니다.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일- 어떤 존재, 어떤 마음, 어떤 인상들이 흩뿌려진 파편, 자국, 흔적들-에 늘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과의 관계, 질문, 탐구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운동(촉각적, 시각적, 개념적 형태 등)을 촉발시키고 싶습니다. 작품 자체가 부각되기 보다는 작품을 경유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시공간을 다른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장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한편 생각과 개념을 배치하는 조형성으로서 조각을 통해 낯선 관계와 상황을 구축하며 실험해 나가고자 합니다. 예술이 될 수 있는 조건과 한계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러한 것을 예술가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이러한 것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의 형식도 새롭게 발명될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분류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수많은 풍경들이 교차성을 이루는 장면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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